나는 이 드라마를 방영 당시에 보지 못했다. 지금에야 보고 있는 드라마이다.
드라마의 제목인 스토브리그(Stove League)의 의미는 야구가 끝난 비시즌 시기에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에 나서는 것을 지칭한다. 시즌이 끝난 후 팬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선수들의 연봉 협상이나 트레이드 등에 관해 입씨름을 벌이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스토브리그의 주요 인물
1. 남궁민이 연기한 작중 야구팀 드림즈의 단장 백승수,
백승수는 '강해야 한다' 이 말이 머릿속 세포마다 박혀 있는 사람이다. 씨름단, 하키 팀, 핸드볼 팀의 단장을 맡았고 그의 손을 거친 팀들은 늘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값진 우승을 거머쥔 뒤 비인기 종목의 수순대로 가난한 모기업을 둔 탓에 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대한민국 스포츠 판에서 가장 큰돈이 오고 가는 곳, 프로야구팀에서 그를 찾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팀은 경기장에서 코치들끼리 멱살을 잡고, 연속으로 꼴찌나 하위 기록을 하는 팀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는 선수들이 지명을 거부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꼴찌 팀. 그런 팀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가 궁금해지는 캐릭터로 활약한다.
2. 프런트 임직원이자 재송그룹 임원인 권경민 상무(또는 사장)
구단의 운영보다는 다른 사업에 관심이 많은 큰아버지를 대신해 실직적인 구단주를 맡고 있다. 극 초반 호텔 사업을 담당하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있어, 수많은 계열사 중에 가장 작은 규모의 돈을 굴리는 드림즈를 추가로 담당한다.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사촌동생이 아무리 무능해도 이 악물고 일하는 자신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 처지를 증오하는 대신 꼴찌 팀인 드림즈를 향한 증오가 싹트게 된다.
수년간 모든 팀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드림즈가 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 같아서 불쾌하고 경멸스러워한다. 신인 단장 후보로 지원한 백승수 단장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쓰려고 하지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백승수 단장과 대치하는 인물이다.
스토브리그의 줄거리보단 명대사
스토브리그의 줄거리는 직접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백승수의 마인드나 대사에 깊은 감명을 얻었기에, 기억에 남는 명대사를 정리해 본다.
: "세영아, 망해도 새로 망하면 좋겠다. 똑같이 망하는 것보단"
-> 극 초반 드림즈 서기웅 전임 단장이 이세영에게 하는 대사인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 "취미로 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 머무르지 않겠죠, 돈 많아도 자기 권리는 챙기세요"
-> 영업팀 한재희에게 백승수 단장이 하는 말인데,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오래 일하다 보면, 열정은 사그라들고 익숙한 일에 대한 보어 아웃(bore-out)이 오는 데, 마침 보어 아웃에 왔었던 나에게 열정을 일깨워 준 대사였던 것 같다.
: "오늘도 수고했어, 고깃집 차려도 되고 만두집 차려도 돼. 공 계속 던져도 돼"
: "연봉은 우리 가족한테 대는 핑계가 되거든. 이제는 핑곗거리로 5천? 좀 궁색하다."
-> 적은 연봉에 싸인하고 집으로 온 장진우에게 아내가 한 대사와 장진우가 후배에게 하는 연봉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대사
아내와 아이 둘을 키우며 살다 보니 책임감은 중해지고, 삶이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 지금 시기에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과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대사여서 속으로 울며 보게 된 대사..
권경민 상무의 대사들
: "왜 자꾸 사과나무를 심어? 내일 없어질 지구에다?"
-> 이 대사는 권경민이 팀 개혁을 꿈꾸는 백승수에게 하는 대사이다. 이 때는 몰랐지만, 후에 보니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 "이유, 얘기할까요? 우리는 야구를 못해요. 그리고 또, 우리는 야구를 '드럽게' 못해요. 그리고 또, 우리는 '몇 년째' 야구를 드럽게 못해요"
-> 참 맞는 말인데 듣는 입장에서 기분 드러운 대사. 괜히 찔리는 나의 심정.
: "가족끼린 같이 일하는 게 아닌데.. 무릎 꿇고 받았던 봉투에 이자까지 쳤으니까 서서 드려도 되잖아요."
-> 이 대사는 드라마 내내 재송의 말 잘 듣는 개로 살아오던 권경민이 자신의 진짜 심경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속 시원한 장면.
: "너 인생 평탄하게 살았구나? 이게 뭐가 써? 인생이 훨씬 더 쓰지. 인생이 얼마나 쓴 줄 알면 이게 달아."
-> 백승수에게 술을 마시고 하는 이 대사에서 두 가지를 느꼈다. 타인을 바라보는 권경민의 편협한 시선과 나도 이제 인생이 쓰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구나 라는 감정. 술이 쓰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백승수 단장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대사들
: "말을 들으면... 당신들이 다르게 대합니까? 말을 듣는다고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권경민의 말을 잘 들어본 적이나 있냐던 질문에 "후회합니다, 그때를.. 말을 잘 들으면 부당한 일을 계속 시킵니다. 자기들의 손이 더러워지지 않을 일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직이면, 말을 안 들어도 일을 잘하면 그냥 놔둡니다."
: "임동규 선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드림즈에서 은퇴하겠습니까?"
-> 탈도 많고 갈등도 많았던 백승수와 임동규의 대화 중, 둘의 화해가 시작되는 대사
이 대사는 드라마를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담고 있다.
: "아니요. 저한테는 처음으로 무언갈 지켜낸 것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걸로도.. 힘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 참.. 이 장면에서 백승수 역에 남궁민 연기의 내공을 볼 수 있었다. 같이 울컥하게 된 기억에 남는 장면, 몇 번을 돌려보게 됐다.
: "글쎄요, 해봐야겠지만 뭐... 열심히는 할 겁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라며 시청하고 있던 우리에게 되묻는 장면
-> 맞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모두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다들 그렇다.
마지막 화, 스토브리그의 엔딩
: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스토브리그를 본 후기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어떻게 보면 조금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밌게 열심히 챙겨보았던 이유는 하나다.
"내 삶이 팍팍해서.."
언젠가 든 생각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는 20대 청춘과 같고 어떨 땐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
가끔은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소년만화에는 성장하는 주인공과 해피엔딩일 거라는 기대와 희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태도가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
스토브리그는 몇 년 전 방영했던 미생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소년만화 같은 모습이 닮아 있다. 해내는, 해내고야 마는 그런 성장형이면서, 절망도, 실패도 보여주는 그런 내용.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두 드라마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 작품이다.
지금 나에게 희망이 필요한 시기여서 그런지, 스토브리그는 킬링타임보다는 곱씹으며 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였다. 나중에 상황이 좋아진 뒤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백승수와 상대역인 권경민은 드라마 내내 외로운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고독함과 외로운 포지션에 계속 감정이 이입돼서 마냥 즐겁게만 볼 수는 없었던 것 같지만, 그들 또한 마지막엔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희망적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나에게도 희망이 살아 숨 쉬는 날이 오길 스토브리그를 보면서 나의 다음 스텝이 희망적이길 꿈꿔본다.
아직 나의 인생은 3회 말이니까.
다음은 다시 영화 <이프온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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